‘열혈사제’와 ‘사바하’, 신과 인간
‘열혈사제’와 ‘사바하’, 신과 인간
  • 유진모
  • 승인 2019.03.04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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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추악함을 고발하며 신을 묻다
SBS 화면 캡처.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박재범 극본, 이명우 연출)가 지상파 심야 미니시리즈로선 이례적인 16%의 시청률을 올리고, 영화 ‘사바하’(장재현 감독)가 관객 200만 명을 넘겼다. 사제와 목사가 주인공이란 유사성을 지녔기에 당연히 종교가 서사와 각 캐릭터에 영향을 끼치지만 농도는 좀 다르다.

‘열혈사제’는 구담성당에 부임한 해일(김남일)과 스승인 주임신부 영준(정동환)의 논쟁을 통한 종교적 고뇌가 살짝 펼쳐졌지만 영준의 의문사 후엔 그보단 해일과 폭력조직 두목 철범(고준)의 대결, 형사 대영(김성균)과 검사 경선(이하늬)이 해일과 이루는 구도에 집중하느라 신과 살짝 거리를 둔다.

해일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정보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다. 하지만 작전 수행 중 어린아이들을 폭사시킨 뒤 죄악감과 자책감에 빠졌다가 영준의 도움으로 새 출발을 했다. 교황으로부터 덕망과 명예의 상징인 몬시뇰이란 호칭을 받은 영준의 가르침 속에 사제가 돼 최근 함께 근무하게 됐었다.

그러나 다혈질의 본성과 요원 때 익힌 폭력성은 살아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영준은 신과 그에 대한 믿음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지만 유물론적인 해일은 법은 물론 그게 못 미치는 곳에서의 ‘눈-눈, 이-이’라는 함무라비 법전 혹은 ‘이직보원이덕보덕’의 공자를 더 신뢰한다.

SBS 화면 캡처.

신부가 주인공이지만 종교는 서사의 한 축인 구조주의적 구성 안에 머물고 대신 역설에 집중한다. 가장 도덕적이고 정의로워야 할 구청장, 검사, 경찰 등은 모두 사익만 추구하는 카르텔을 구성하는 악의 축일 뿐이다. 경건하고 점잖아야 할 해일은 알코올의존증과 분노조절장애 탓에 즉흥적, 폭력적이다.

이 도치법을 넘어선 과장법은 사회적 선택이냐, 자연 선택이냐에 대해 나름대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가장 강한 공공의지로 공공선을 추구해야 할 공무원들이 깨진 도덕의 파단면 위에서 이익의 망집에 사로잡혀 죄책감에 대한 저항성과 면역성만 키운 채 범죄를 밥 먹듯 저지르는 아이러니, 혹은 현실!

결국 신이 아닌 인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영은 해일에게 “성직자라 현실감각이 없는 거냐? 신부님은 정상이 아닌데 왜 본인만 몰라?”라고 핀잔을 준다. 후배 신부 성규가 억울한 마음에 “기도 때 처음으로 주님에게 짜증을 냈다"라고 고백하자 해일은 “1분마다 그러는 사람도 있다”라고 응한다.

사이비 종교 매각교를 등장시키는 것도 ‘사바하’랑 닮았다. 교주 용문은 광신도들을 속여 번 돈으로 카르텔을 후원하고, 그 대가로 그들로부터 사업 혜택을 얻어낸다. 해일은 “세상의 악은 대단한 게 아냐, 바로 가짜”라며 “내가 누군지는 내가 정해”라고 말한다. 대단히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지녔다.

'사바하'.

여기에 비하면 ‘사바하’는 상당히 심오한 환원주의적 태도를 갖춘다. 마치 ‘고백록’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의 대비적 혹은 유비적 뉘앙스다. 때론 유신론과 회의론(혹은 범신론)이 대결한다. 박 목사는 사이비 종교를 척결한다며 후원금을 받아 제 주머니를 채운다.

겉으론 목사라는 보편자이지만 사실 개별자로선 사기꾼이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는 아니지만 유사하긴 하다. 교계에서 그를 이단아로 몰아 추방하려는 시퀀스가 그걸 뒷받침한다. 그런데 단순한 사이비 종교 집단인 줄 알았던 사슴농장의 엄청난 비밀을 알아갈수록 신의 거처와 신앙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해일과 매우 유사하다. 박 목사에게 심원하진 못해도 신앙은 있었다. 그런데 동방교주 제석의 엔 사바 누르(‘엑스맨: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신비력을 보곤 ‘나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신이 진짜 신인가?’라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내 신은 뭐 하고 있나 알아보려고’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다.

감히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신성모독 따윈 없고 자기 신앙을 믿는다. 그래서 가짜와 악귀와 탐욕스러운 자가 판을 치는 이 혼돈의 세상을 수수방관하는 주님이 원망스러워 ‘(일 안 하고)어디 계시나이까?’라고 묻는다. 인간이 신에게 받은 자유로 남의 자유를 해쳤기에 세상이 어지러워졌다는 메타포.

'사바하'.

박 목사의 신을 갈망하는 시퀀스는 해일의 분노와 맞닿아있다. 고위 공무원은 국민처럼 신의 자식인 동시에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 봉사를 하는 게 마땅한데 국민이 준 권력을 오로지 사익을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걸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들을 속이고 때리며 죽이기까지 한다.

제석은 신적인 데미갓(반신반인)이거나 초능력자일 것이다. 그와 박 목사의 대결은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회심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신은 죽었다’며 인간의 영원회귀와 극복인을 주창한 니체의 대립 같다. 감독은 불가역적인 인간의 신격화를 신성에 대한 불경스러운 도전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도 니체도 아닌 중도를 택하지만 신의 거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쌍둥이 자매 금화와 ‘그것’이다. 이 대립쌍은 이원론 혹은 이항대립으로 보였지만 결국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 혹은 인과율, 또는 ‘이오니아의 마법’과 같은 자연법(스토아 강령)에 기대는 경향이 짙다.

천지창조론적 귀납도, 진화론적 연역도 신과 인류의 관계에 대해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지만 종교의, 개개인의 자유는 중요하다. 단, 타인의 자유에 대한 피해는 신이 원치 않는다. 모든 문화와 학문엔 일원론과 다원주의가 공존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탄력성, 그리고 포옹과 포용력은 자유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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