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가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평가받는 이유
비틀스가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평가받는 이유
  • 이창석
  • 승인 2020.05.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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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전 세계 팝 음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0순위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왜 그들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어째서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뮤지션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빌보드 차트 1위에 어쩌고’, ‘앨범을 얼마나 팔아치우고등의 수사는 비틀스라는 거대한 뮤지션을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천박하기에 생략한다.

그냥 전 세계 뮤지션은 물론 오케스트라까지 가장 많이 리바이벌하거나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이 ‘Yesterday’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틀스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그들의 음악은 트렌드였고,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며,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항한 영국의 최초의 오빠부대 생산자였을 뿐만 아니라, 록이라는 가장 중요한 대중음악의 완성자였다.

비틀스는 아이돌그룹-과도기-뮤지션의 3대 변화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 그들은 아이돌그룹이었다. 영국 리버풀 출신의 10대 소년 존 레논과 2살 어린 폴 매카트니가 만나 쿼리맨이란 스키플 밴드를 결성한 그들은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개러지밴드에 불과했다.

특히 스키플이란 음악 자체가 비주류인데다 시카고에서 유치하게 시작돼 영국에서조차 허접한 내용으로 펼쳐진 10대들의 장난 수준의 음악이었으니 쿼리맨의 음악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었다. 이들은 1958년 매카트니보다 1살 어린 조지 해리슨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밴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당시 레논과 매카트니의 기타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해리슨은 이미 탁월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독일 등의 순회공연을 통해 스키플밴드에서 로큰롤밴드로 서서히 탈바꿈하게 되는데 누가 뭐래도 전 멤버들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았음은 확연하다.

그리고 1962년 그들보다 더 유명했던 드러머 링고 스타(레논과 동갑)를 영입해 실버 비틀스에서 을 떼고 비로소 비틀스란 이름을 굳히며 본격적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다. 레논보다 5살 위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멤피스로 이사 간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보듯 철저하게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거의 흑인 일색이었다. 그런데 그는 백인이기에 컨트리앤드웨스턴을 자주 접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 컨트리앤드웨스턴 넘버들을 리듬앤드블루스의 창법으로 부르는 차별화된 개성으로 로큰롤의 이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비틀스의 음악 속에는 블루스적 요소가 별로 많지 않다.

그 배경은 아마도 팝의 기초가 된 유럽의 클래식에 대한 영국의 자존심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 있다. , 레논이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비행청소년이었고, 매카트니가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뮤지션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대조적인 두 영국의 청소년이 각기 다른 감수성을 잘 융합했다는 점에선 독창성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1964년 미국에 첫걸음을 내디딜 때만 해도 그들의 음악은 프리틴송(10대 초반을 겨냥한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이었다. 즉 그들은 아이돌그룹이었다. 미국 청소년들은 이 이국적인 더벅머리 청년들에게 열광했고, 순식간에 전 세계에 비틀스 신드롬이 광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또 비틀스 모즈라는 그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을 강타한 ‘I wanna hold your hand’ 같은 프리틴송이나 부르던 비틀스는 미국에서의 성공을 기점으로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가사에 사회적 메시지와 우주적 세계관을 담았고, 음악은 드럼과 퍼커션을 다소 둔화시키는 대신 기타를 한층 강화한 백그라운드를 꾸몄다. 그 사이 매카트니의 베이스기타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해리슨의 기타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고, 후에 인도의 시타까지 연주하면서 더욱 강하고 독창적이며 심오해졌다.

그리고 1967‘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을 계기로 비틀스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공식적으로 마지막 앨범이 된 ’Beatles‘(일명 ’White album‘)로 이어지는 컨셉트 앨범형식은 훗날 록의 모든 하위 장르의 모델을 제시하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한 장의 음반이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 작품이라는 첫 시도로써 모든 록 뮤지션들을 계몽시킨다. 특히 비틀스앨범은 더블앨범이라는 시도로 록을 대중가요가 아닌 클래식의 영역으로 격상시킨다.

음악적으로 중기보다 훨씬 더 심오한 가사와 풍부한 음악성을 갖춘 것은 당연하지만 뭣보다 두드러지는 점은 스튜디오 녹음의 기술상의 진일보다.

1960년대 중반을 계기로 각종 전자악기부터 이펙터, 녹음 기술 등의 비약적인 발전은 스튜디오에서의 녹음을 혁신했으며 이에 따라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거의 모든 창작과 개혁 그리고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해진 것이고, 이 네 명의 진보적인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감각을 모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록 역사상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세션에 동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효시가 바로 비틀스라는 점이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기본은 록이다. K팝도 마찬가지다. 록은 로큰롤에서 발달했고, 로큰롤은 리듬앤드블루스와 컨트리앤드웨스턴의 결합에 재즈를 촉매제로 해서 탄생됐다. 결국 17세기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온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이 200여 년간 발전시킨 블루스가 록의 뿌리가 되는 셈인데 미국과 멀리 떨어진 영국의 20대 청년들이 거꾸로 록으로 미국을 점령한 것이다.

이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비틀스를 필두로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 수많은 록 뮤지션들로 이어졌다. 록 역사상 3대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지미 헨드릭스 역시 흑인 로커란 이유로 미국에서 무시당할 때 영국이 먼저 알아보고 무대에 세웠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두 명인 에릭 클랩턴과 제프 벡도, 헨드릭스가 요절한 후 그 빈 자리에 자연스럽게 추대된 지미 페이지도 모두 영국인이다.

아이돌그룹의 효시, 영국 록의 미국 침공의 선두주자라는 자존심, 록의 모든 장르와 컨셉트 앨범의 창조자, 스튜디오 녹음 발전의 모델, 그리고 스타일의 리더가 바로 비틀즈의 의미다.

우리가 자부심을 품을 수 있는 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현대 최고의 대중음악의 신으로 추앙하는 비틀스와 방탄소년단을 동일시하는 현대 사조다. 방탄소년단은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한국 K팝스타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크리에이터로서의 실력을 앞세운 아티스트 성향이 짙고, 그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Beatles를 줄이면 BTS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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