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코미디
‘정직한 후보’,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코미디
  • 이창석
  • 승인 2020.0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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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장유정 감독)의 제목과 내용은 다분히 반어법적이고, 사회 풍자적이다.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이 창궐하는 정치판을 비판하고, 주인공 주상숙 역을 맡은 라미란의 코미디 솜씨를 최대한 재미로 부각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여당의 3선 국회의원 상숙은 곧 열릴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한 뒤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그녀는 할머니 옥희(나문희)를 사망으로 위장한 뒤 꼼수약관으로 소비자를 울린 보험사와 싸워 승리하면서 첫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녀는 각종 이권에 개입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녀는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호화찬란한 단독주택은 숨긴 채 20편 서민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그녀가 제일 잘하는 건 거짓말이다. 숨 쉬는 것 빼곤 다 가식이다.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남편 만식(윤경호)은 유권자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외조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그녀의 입이 진실만을 쏟아내게 된다. 유세에 나섰다 하면 진실만 털어놓기에 우수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러자 여당의 김 대표는 유사 성향의 다른 정당의 후보를 영입하고 그녀에게 후보를 사퇴하라고 압박한다.

상숙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보좌관 희철(김무열)이 지난 12년간 그녀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온 이유는 신인 때의 그녀에게서 잔다르크의 면모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의 맛을 본 후 철저하게 달라졌다. 고급 주식정보를 빼돌려 돈을 벌고, 비리투성이인 사학재단을 운영하며 또 돈을 번다.

내부자들이 꽤 묵직하게 정치, 언론, 사법 등의 민낯을 까발렸다면 이 작품은 적지 않은 정치인이 숨 쉬듯 거짓말을 내뱉고, 밥 먹듯 구린내 나는 이익을 챙긴다고 폭로한다. 판타지적 설정으로 상숙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후 까발리는 자신과 정치계의 진면목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게 그게 현실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는 그렇게 상숙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궁지에 몰렸다가 그걸 역으로 이용해 반전에 성공하지만 기자에 의해 그녀가 운영한 사학재단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등 거센 파도를 탄다. 그리고 그녀는 위기에서 탈출해 급하게 택시를 타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택시 기사의 그런데 어디로 가세요?”라는 질문에 상숙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정치 풍자 코미디로서 꽤 재미있으면서도 전체적인 구성과 연출이 세련됐다고 보기엔 힘들지만 이 마지막 시퀀스의 대사 하나가 그런 부족함을 모두 보완해 준다.

지금까지 그녀는 무척 바쁘게 달려왔고, 매우 치열하게 싸워왔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다면 꿈도 못 꿨을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사회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존경심까지 얻어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게 과연 자신이 느낄 최고의 선일까?

 

감독은 인생철학의 시발점이 되는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가식적인 정치인,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인에게 인생 제대로 살라고 호통 치는 듯하다.

1992년 불가리아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당선된 검소하기로 유명한 젤류 젤레프만큼은 아니라도 정치인으로서의 기초적인 양심과 사명감 그리고 소명의식 정도는 갖춰야 되는 게 아니냐고 분노하는 듯하다. 굳이 현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큼 교양을 갖추고 나이를 먹어간 사람들은 인생이란 게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 100년도 못 채우고 죽는다. 아니 70살만 돼도 사실상 왕성한 사회활동이 힘들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치열하게 사느라 충분히 즐기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위해 나쁜 짓을 한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기사의 질문에 상숙은 아무런 대답을 못 한다. 그 당황한 상숙의 표정에서 나는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아왔을까? 무엇을 위해 그리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이게 올바로 사는 것이기는 한 걸까?’ 등등의 많은 상념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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