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장인정신으로 만든 명품 누아르
'지푸라기~', 장인정신으로 만든 명품 누아르
  • 이창석
  • 승인 2020.02.22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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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탓에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진 극장가에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에 대해 언론, 평단, 관객 등이 고루 호평을 내놓고 있다.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의 원작 소설의 힘도 워낙 뛰어나지만 각색,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작품을 빛나게 해준다.

기생충에 대한 눈부신 찬사와 그걸 입증하는 각종 수상 소식에서 보듯 한국 영화의 수준은 프랑스 등의 유럽이나 미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영화계 혹은 관객은 누아르를 매우 좋아하는 듯하다. ‘맨발의 청춘’(1964,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 우리 관객은 한때 홍콩 누아르에 푹 빠지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한국 하드보일드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수준급 누아르고, 주연 배우들의 캐릭터 구현 실력 또한 번쩍번쩍 빛이 난다. 그리고 작품의 색깔은 어둡고 처절한 핏빛으로 일관된다. 신선한 선홍색이 아니라 거무죽죽한 톤이다.

중년의 가장 중만(배성우)은 호텔 사우나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그의 아내 영선(진경)은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순자(윤여정)는 수시로 영선을 괴롭힌다. 출입국관리소 공무원 태영(정우성)은 도망간 연인 때문에 빚을 져 사채업자 두만(정만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젊은 주부 미란(신현빈)은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진 탓에 남편의 무시와 폭행에 시달리며 유흥주점에서 접대부로 일해 빚을 갚고 있다. 손님으로 만나 연인이 된 중국 출신 불법 체류자 진태(정가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는다. 진태는 자신과 함께 중국으로 도망가자며 미란의 남편을 암살하는데 엉뚱한 사람을 죽인다.

주인공들은 모두 추락하는 사람들이다.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데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다. 이미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살고 싶으니까. 지푸라기를 잡아봐야 살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발버둥을 쳐보고 싶다.

유흥주점 사장 연희(전도연)는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한 접대부를 도와주며 샌드 타이거 상어를 거론한다. 어미의 뱃속에 든 새끼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먹고 먹힌 뒤 가장 강한 놈 한 마리만 살아남아 세상으로 나온다. 동물의 세계에도 자연법이란 게 있지만 여기 짐승들에겐 약육강식 하나밖에 없다.

샌드 타이거처럼 형제도 없으니 친구나 연인, 혹은 부부마저도 내 생존과 부를 위해선 가차없이 해코지하거나 죽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액션이나 누아르 등의 장르엔 선악구도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엔 그 구분이 없다. 애인 때문에 빚진 태영은 나약하지만 그렇다고 착하진 않다.

 

엄청난 돈이 든 남의 가방을 슬쩍 빼돌리는 중만은 매우 악질인 절도범이지만 딸의 학비, 어머니의 치료비 등 돈이 절실했다. 화장실 청소로 생활비를 보태는 아내를 편하게 해주고 당당한 남편이 되고 싶었다. 웬만한 조직폭력배도 도망갈 만큼 잔인한 두만에게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조폭보다 더 흉악한 권력자들을 보라!

배경이 되는 평택은 비행기를 탈 형편이 못 되는 내외국인들이 배로 출입국을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거친 자들보다 더 거칠어야 한다. 돈다발이 든 가방은 루이 비통이다. 인트로에서 카메라는 그 높이에서 핸드헬드로 가방을 따라간다. 이 시퀀스 하나가 이 영화의 주제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미국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한 결과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세계는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체제로 안정된 사회를 구성한 듯하지만 사실 질서는 자본가에 의해 형성된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모든 가치관이 돈으로 결정되기에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세상은 보편과 타당을 외치지만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친다. 주인공들은 정상적인 노동이나 선한 행위로는 절대 자본가가 누리는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 아니 그런 건 언감생심이고, 그 계층에서의 나름대로의 만족감조차 얻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그 잘못 접어든 길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홍콩 누아르는 전성기를 지나긴 했지만 21세기에도 무간도라는 썩 훌륭한 작품을 배출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무간도만큼 세련됐다고 하긴 힘들지만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다루는 연출 솜씨는 유려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다.

한국 영화계에서 비교적 최근의 뛰어난 누아르라고 하면 신세계불한당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무간도가 연상되는 내용이 없진 않지만 신세계는 많은 유행어를 낳았고, ‘불한당은 배우나 감독이 아닌 영화에 대한 팬클럽 불한당원이 조직되는 희귀한 현상까지 만들 정도로 열렬한 성원을 이끌어낸 바 있다.

무간도’, ‘신세계’, ‘불한당이 루이 비통 같은 세련미를 지녔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장인이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이어 만든 무게감이 느껴지는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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