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극장가 흥행 결과의 의미
설 연휴 극장가 흥행 결과의 의미
  • 천세민
  • 승인 2020.01.23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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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남산의 부장들'

 

지난 22일 설 연휴 극장가의 흥행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출발은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이 전국 1363개 스크린에서 7287회 상영돼 252114명을 모으며 주도권을 잡았다. 2위는 943개관에서 4613회 상영돼 81351명이 관람한 히트맨’(최원섭), 3위는 647개관에서 2732회 상영돼 45094명을 모은 미스터 주: 사라진 VIP’(김태윤)가 각각 차지했다.

연휴는 2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이제 개봉 첫날임에 불과하지만 이 판도는 당분간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지난 8일 개봉 후 파죽지세인 듯했던 닥터 두리틀을 누르고 선두를 내달렸던 해치지 않아’(손재곤 감독)는 같은 날 2221명을 동원하며 사실상 흥행 다툼에서 밀려났다. 누적 관객 수 968616명으로 손익분기점인 245만 명이 사실상 멀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달 6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클로젯, 12정직한 후보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개봉되기 전까지 2~3주는 전술한 3편이 흥행을 주도할 것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큰 순위 변동은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물론 2월에 개봉될 그 작품들 역시 어느 것 하나 폭발적인 흥행 선두를 자신하기 쉽지 않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국가정보국의 에이스 요원 태주(이성민)가 갑작스런 사고로 모든 동물의 언어를 알아듣게 된 후 사라진 중국의 국가적 선물 판다를 찾는 활약을 그린 코믹 액션이다. 배정남, 김서형, 갈소원 등이 출연했다.

태주를 돕는 셰퍼드는 잘 훈련된 실제 동물이지만 그 외의 동물들은 모두 CG. 국내 기술이 뛰어나기에 동물들 자체는 어색하지 않고, 셰퍼드의 연기 솜씨(?)도 썩 괜찮다. 여기에 이성민이란 연기파의 모처럼의 어깨의 기운을 뺀 코미디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시나리오와 연출력이다.

한 박사가 판다를 훔쳐 거기서 유전자를 추출해 애완용 미니 판다를 만들어 그 분양 사업을 독점하겠다는 설정부터 허술하다. 모든 계획이 성공해 시장을 형성했을 때 그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을까? 더구나 그와 손을 잡는 국제 테러조직의 목적 역시 확연하지 않다.

'히트맨'
'히트맨'

 

연출에 있어서는 크게 두 가지가 관객을 사로잡지 못한다. 첫째는 액션이다. 태주 등과 테러조직의 액션 시퀀스는 코미디의 가벼움을 보완해줄 긴장의 장치인데 어색해도 한참 어색하다. 또 하나는 캐릭터의 과장, 코미디의 과잉이다. 태주를 존경하는 후배 요원 만식의 행동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태주보다 앞서 진급한 그의 후배 민 국장의 대사는 뜬금없다. 웃기려는 장치가 시원한 웃음보다 외려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유사한 지점을 추구하는 히트맨을 만난 것도 불운이다. 국정원의 암살요원 준(권상우)은 어릴 때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죽음을 가장해 잠적한 뒤 신분을 바꿔 웹툰 작가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현역 시절을 그림으로써 작가로서는 성공하지만 국정원의 비밀을 까발린 탓에 국정원은 물론, 그가 그동안 처단한 테러리스트와 연관된 테러조직의 타깃이 된다는 내용이다.

만듦새는 극찬할 수준은 아니지만 팝콘무비로서는 나쁘지 않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미스터 주: 사라진 VIP’에 비해 히트맨을 높게 평가하는 게 증거다. 특히 액션에 특화된 권상우의 액션 시퀀스는 코미디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돋보인다.

흥행 1위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특히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19791026일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연회 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하 당시)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을 쓴 동명의 논픽션(김충식 기자)을 원작으로 한다.

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을 비롯해 박통(이성민),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주인공이다. 내용은 규평이 박통과 상천에게 왜 총을 쐈을까라는 상상력에서 시작해 사건 발생 40일 전부터 펼쳐진다.

우 감독은 파괴된 사나이’(2010)로 데뷔해 간첩’(2012)까지 비교적 안정된 내용과 흥행력을 보였지만 대단하게 주목받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부자들’(2015)로 뛰어난 연출력과 흥행 파워를 보여주며 정상급 감독으로 우뚝 떠올랐다. 당시 이병헌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사실상 재기가 힘들 상황이었지만 끊임없는 사과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의 연기력과 흥행파워로 보란 듯이 재기했다. 우 감독에게도 이병헌에게도 각별한 작품이자 계기가 아닐 수 없었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
'미스터 주: 사라진 VIP'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작가가 된 우 감독은 후속작 마약왕에서 송강호라는 배우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살짝 체면을 구겼다. 그래서 그 다음 작품인 남산의 부장들이 그에게도, 이병헌에게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었는데 일단 출발이 좋다.

우 감독은 국내 감독 중 누아르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출가인데 남산의 부장들은 그런 주특기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관람한 관객들은 극찬을 하며 흥행 대성공을 예측한다. 그건 우 감독의 상상력과 그걸 스크린에 구현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증거다.

물론 전술한 세 배우를 비롯해 김소진, 곽도원 등의 연기 솜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병헌과 이성민의 대결에선 숨이 멎을 정도라는 평가다. 김충식의 논픽션이 영화화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다수가 정치적인 색깔을 우려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국론이 크게 분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 감독은 정치색 논란을 잘 피해가는 영리함을 보였고, 관객들은 영화를 영화로만 볼 줄 아는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였다. 관람 후의 관객들은 박정희나 김재규를 미화했다거나 혹은 그들을 폄훼했다고 화를 내는 일 없이 영화의 매끄러운 결, 수준, 그리고 이병헌 등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따름이다.

이는 지난해 경제대란 속에서도 2억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아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팬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다. K, K드라마를 비롯해 기생충에서 보듯 한국영화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만큼 관객들의 눈높이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확증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자세가 영화의 종주국 프랑스, 영화 흥행의 중심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명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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