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로브 수상, 봉준호, 그리고 아콰피나와 김치찌개
골든 글로브 수상, 봉준호, 그리고 아콰피나와 김치찌개
  • 이창석
  • 승인 2020.01.0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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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 스틸
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 스틸

 

동양계 미국 여배우로서 2번째로 ‘Saturday Night Live’ 호스트에 선정되는 등 그야말로 최근 가장 한 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 아콰피나(Awkwafina, 32, 본명 노라 럼)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외국어 영화상 수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양대 시상식인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는 할리우드라는 상업영화 시장의 상징성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에 고착돼있다는 한계도 드러낸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아카메디를 로컬 잔치라는 식으로 표현한 게 전 세계적으로 통쾌하게 받아들여진 건 다 이유가 있다.

이번에 기생충이 본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됐고 수상한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의미다. 만약 50% 이상을 영어로 찍었다면 감독상, 작품상, 남녀주연상 등에서 한 자리 하지 않았을까? 봉 감독의 “1인치 정도의 자막이란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은 어떤 면에선 감격과 감사의 뜻이 아니라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 던지는 일갈일 수도 있다.

아콰피나 가족. 이하 출처=아콰피나 SNS.
아콰피나 가족. 이하 출처=아콰피나 SNS.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국가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이 주축이 됐다고는 하지만 서아프리카의 흑인부터 중남미인과 19세기 중반 동서 철도 건설 때 대량 유입된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전 세계의 인종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아메리칸드림을 설파하는 나라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인상을 주고 실제로도 LA폭동 등에서 보듯 그게 현실인 양태를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메카시즘이 남아있고, 사회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엄존하는 곳. 하지만 펜이 칼보다 강하듯 문화는 정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이번 골든 글로브가 여실하게 보여줬다.

아콰피나는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뉴욕으로 이민 온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바쁜 아버지를 대신한 친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중국 문화와 가깝게 자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트럼펫과 클래식을 공부했고 13살에 랩을 시작하는 등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더니 뉴욕의 저명한 라과디아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선 트럼펫을 연주하고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작곡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 뉴욕 올버니 대학에 입학해 언론학과 여성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언론사와 출판사에 취직을 한 뒤에도 아마추어 래퍼로 무대 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의 예명은 스파클링 생수 AQUAFINA에서 영감을 얻어 어색함(Awkward)이란 뜻을 담아 지었다. 또 다른 후보로 김치찌개가 있었다고 한다.

한류열풍의 중심엔 K팝을 비롯해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우뚝서있다. 그런데 그 문화 태풍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김과 김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실제 뉴욕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는 한국식당이 빠지지 않고 존재하며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 및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아콰피나가 중국계 미국인인 건 맞지만 한국인인 어머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김치찌개라는 예명을 고려했던 건 그만큼 김치에 대해 생경하기에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외려 김치를 좋아했고 매우 친숙했다는 정반대의 명증일 수도 있다.

기생충의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은 한국 영화로선 최초다. 아콰피나의 여우주연상 수상도 동양계 여배우로선 최초다. 골든 글로브는 할리우드와 미국 TV업계를 취재하는 외국 언론인들로 구성된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데 이어 열리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에는 개방적이었던 만큼 한국엔 폐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센 변화의 물결 앞엔 미국인의 보수성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아콰피나와 봉준호의 쾌거는 국수주의나 민족주의 등의 국가주의조차도 문화 앞에선 속수무책이란 글로벌 시대를 입증하는 명명백백한 증명이다.

이제 세계 각국과 각 나라의 문화계는 문명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듯하다. 봉 감독의 지적대로 언어로 구분할 게 아니다. 이미 인종차별은 부정의임이 충분히 입증됐다. 어떤 피부색에 어떤 여권을 가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열린 마인드와 거기서 우러난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발전적인 콘텐츠가 문화의 우열을 가린다. 봉 감독과 아콰피나는 그런 면에서 선구자의 반열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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