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귀수편’, 생사란 운명인가, 시공간적 운인가?
‘신의 한 수: 귀수편’, 생사란 운명인가, 시공간적 운인가?
  • 유진모
  • 승인 2019.10.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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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귀수편’(리건 감독)5년 전 35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신의 한 수의 스핀오프 버전이다. 전편에서 살인죄 누명을 쓰고 수감된 태석(정우성)에게 옆방의 수감자가 머리로 바둑을 두자며 노크를 한다. 태석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출소하며 그에게 이름을 묻지만 답은 없다.

출소 후 관철동 주님(안성기)을 찾아간 태석이 머리로만 바둑을 두는 존재자에 대해 언급하자 부산에 그런 수를 쓰는 자가 한 명 있는데 바로 귀수라고 답한다. 이 영화는 그 귀수의 탄생을 그린다. 1988. 일찍 부모를 여읜 수연은 남동생과 살기 위해 황덕용 프로 기사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황 프로는 수연에게 몹쓸 짓을 하고 소년은 우연히 그걸 목격한다. 그날 밤 수연은 목을 매고 소년은 서울행 기차를 탄다. 타고난 바둑 실력을 지닌 소년은 한 기원에 들어가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수백 배 불려 주린 배를 채운다. 그의 앞에 머리로 두는 맹기바둑의 고수 허일도(김성균)가 나타난다.

소년은 일도를 따라 산속에서 피나는 수련을 거친 뒤 속세에 나와 숨어서 무전기로 그의 내기바둑을 도와 승승장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착해 보이는 한 노동자가 일도에게 전 재산을 빼앗긴 뒤 자살하고 소년 또래쯤 되는 아들이 거기서 오열하는 걸 목도한다. 소년의 죄책감을 일도는 무시한다.

 

일도는 평생 악연으로 엮인 부산잡초(허성태)를 찾아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끝에 그의 재산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그냥 호락호락 넘어갈 잡초가 아님을 아는 일도는 소년에게 저금통장을 주며 빨리 몸을 피하라고 하지만 칼잡이가 나타나 일도를 찌르고 도망가는 소년의 앞을 잡초가 가로막는데.

영화의 본격적인 얘기는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어른이 된 주인공(권상우)이 관철동 똥 선생(김희원)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내기 바둑 거간꾼인 똥은 주인공을 데리고 내기판을 전전하며 큰돈을 쓸어 담는다. 똥은 사랑하는 홍 마담과 결혼하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주인공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삶과 죽음, 운과 운명 등 이항대립의 양가성이란 측면에선 매우 데카르트(이원론)적이다. 자신을 따라가겠냐는 일도 앞에서 소년은 숫자가 나오면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동전을 던진다. 그러나 ‘100’이 아니라 백원이 나온다. 그럼에도 소년은 일도를 따라간다. “난 운을 안 믿어. 항상 나빴기에라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동전을 던지는 행위는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가 빌런으로 변한 투 페이스와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본래적으로 정해져있다는 운명론 혹은 기계론이자 다른 측면에서 볼 때는 그때그때의 운에 따른다는 명리학이다. 마지막에 똥은 주인공의 이름을 묻지만 입은 안 열린다.

 

그러자 똥은 다음에 만나면 귀수라 부르겠다고 이름을 지어준다. 그는 만약 바둑의 신이 있다면 너처럼 둘 것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바둑이 뼈대지만 바둑에 흥미가 없더라도 마치 정교한 무협영화를 보는 듯한 스릴과 액션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고 그만큼의 가치를 지지는 작품이다.

리샤오룽(이소룡)사망유희가 유행시킨 도장 깨기식의 난이도를 높여가는 도전은 상업성을 높이고, 특히 전반의 암시 후 후반에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톨이(우도환)는 충분한 변수로서 작용한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적 있어라는 질문은 복수의 허망함을 뜻하는 교훈이다.

귀수의 본명이 끝가지 거론되지 않는 것과 그의 신 같은 바둑 실력은 같은 의미다. 그는 사람일 수도, 신일 수도 있다. 그는 실존 인물일 수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 즉 운명의 형상화일 수도 있다. 그는 세상만사의 정리를 뜻하는 사필귀정이자 길흉화복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새옹지마를 의미한다.

흑백 구분이 없는 투명한 한 가지 돌로 승부를 거는 장성무당(원현준)과의 팔목을 건 대결, 일도의 목숨을 앗아간 잡초와의 목숨을 건 선로에서의 대국, 그리고 마치 극진가라테 창시자 최배달을 연상케 하는 1100의 혈투 등은 관객의 상상력을 비웃는 듯하다. 액션도 요소요소에 적당히 섞여있다.

 

규화보전을 알기에 동방불패에 수백만 명의 관객이 몰린 게 아니듯 바둑판의 좌표를 볼 줄 몰라도 아무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썩 괜찮은 오락물이다. 주인공과 장성무당이 똑같이 투명돌로 대결을 펼치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바둑을 알건 모르건 이 판세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바둑돌은 단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보조 장치일 뿐 관객이 긴장하는 장소는 주인공들의 표정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대결이 어떤 형국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수단은 바둑이라는 매우 정적인 두뇌싸움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처럼 은둔 고수들의 칼부림과 같다.

결국 주제는 세상만사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세사기일국이다. 외톨이의 아버지는 파업 노동자였다. 소년은 그 노동자가 착하고 형편이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 돈을 가져가는 게 부당하다고 갈등했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교훈은 삶이란 게 처절하고 냉정한 승부라는 것이었다.

일도는 소년에게 넌 계산만 하는 기계가 돼라고 주문했다가 나중에 아니다. 사람이 돼라고 정정한다. 그러나 소년은 그냥 기계가 되겠다라고 고집을 부린다. 그와 똥이 타고 다니는 승합차엔 레퀴엠이 적혀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자본주의 세계에 흐르는 음악은 오직 진혼곡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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