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자본주의에서 인간답게 살기란?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자본주의에서 인간답게 살기란?
  • 유진모
  • 승인 2019.10.29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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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의 저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수록된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니콜라스 뢰그 감독, 1976)는 감독의 실험정신만큼이나 글램록을 대표하는 로커 겸 영화배우 데이빗 보위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본주의 미국에서 소외된 이방인을 그린다.

먼 가뭄의 행성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던 타미(데이빗 보위)는 물을 구하는 임무를 띠고 물의 행성지구로 온다. 앞선 문명을 가진 그는 지구인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쏟아내 떼돈을 벌어 월드기업이란 대기업을 차린다. 호텔 직원 메리-로우는 첫눈에 타미에게 반한다.

지구에서 술 등의 유혹에 사로잡힌 타미는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행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자본가들은 월드기업을 빼앗고, 정부는 타미를 억류한 채 신체를 조사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늙어간 메리-로우는 타미 곁을 떠나고, 타미는 변함없이 젊은이로서 조용히 은거한 채 사는데.

 

이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 타미 역에 피터 오툴이 거론됐지만 고작 영화 한 편에 출연했을 뿐인 보위가 전격적으로 캐스팅됐다. 결론적으로 중성적 이미지를 글램록이란 장르로 연결해 무대에 올린 보위의 애매모호한 바이섹슈얼한 이미지는 이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최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보위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타미의 정체성을 썩 그럴듯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상업영화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기에 다수에겐 불편할 수 있다. 설명이 거의 없이 인서트가 대신하고 주인공들의 대사도 짧거나 현학적이다. 타미 대 지구인의 이원론 혹은 이분법이 뼈대다.

그건 순수한 영혼과 자본주의에 물든 황금만능주의의 대립이기도 하다. 타미는 자신의 능력이 지구에서 얼마나 큰돈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 교환가치를 잘 알고 있지만 물과 물처럼 맑은 진이란 술의 사용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여자인 메리-로우가 번쩍 안을 수 있을 만큼 깡마른 체격이다.

 

X레이를 볼 정도로 강퍅한 성격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유해한 요소가 전혀 없다. 마르크스에서 폭력혁명을 제거한 유물론을, 니체에게서 전쟁을 소거한 위버멘시를 각각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그냥 물, 혹은 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만 갖고 귀환하면 될 텐데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진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고백한다. 아마 자본주의에서 맛본 탐미적 술과 향락적 쾌락 탓에 스스로 동력을 잃고 무기력해진 듯하다. 체력은 물론 의지까지. 어쩌면 초반에 아내의 반지를 잡화점에 팔 때부터 이미 자본에 굴복하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까지 날아온 그는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기절한다. 지구의 과학은 눈앞의 편의성 위주로 내달리다 보니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환유, 생명체에게 불친절하다는 직유다. 그는 자신의 행성의 TV를 통해 물이 많은 지구라는 행성에 대해 학습을 한 바 있다.

 

지구에 와선 대여섯 대의 TV를 동시에 틀어놓고 지구에 대한 심화학습에 몰입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작위적이거나 선전 목적의 콘텐츠를 내보낼 뿐 진실은 철저하게 은폐한다. 타미가 지구의 TV에서 배우게 되는 건 거짓이고 왜곡이다. 그래서 “TV가 이상한 점은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자신을 환멸을 느낀 과학자라고 표현하며 냉소적인 소설가, 알코올중독인 배우, 맛이 간 우주비행사와 동격이라고 표현한다. 지나치게 실증주의적인 과학과 실용주의적인 자본주의는 그 박사 같은 유명론적인 과학자에겐 참담하고, 꿈을 가져야 마땅할 소설가들에겐 숨 막히기 마련.

지구인으로 변신한 타미는 거울로 자기 몸을 관찰한다.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본래의 몸으로 바꾼 뒤 메리-로우 앞에 나타난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쟁 종전 즈음 제작됐다. 세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는 성공의 나라 미국이 순수한 사람에게 얼마나 힘든지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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