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분짜리 ‘그것 2’ 보기 위한 ‘그것’ 예습
169분짜리 ‘그것 2’ 보기 위한 ‘그것’ 예습
  • 유진모
  • 승인 2019.09.01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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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싹을 자르는 어른의 일규주의에 항거하는 잔혹성장동화

 

오는 4일 개봉되는 그것: 두 번째 이야기’(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는 러닝타임이 무려 169분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아무래도 전편 그것을 알고 보는 게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미국의 한 시골 마을 데리는 역사적으로 화재 등 인명사고와 함께 실종자가 유독 많았다.

청소년 빌은 비 오는 날 어린 동생 리치에게 종이배를 접어준다. 도로 위 물이 고인 곳에 리치가 띠운 배는 하수구에 빨려 들어간다. 형에게 혼날 것이 걱정된 리치가 하수구를 들여다보자 그 속에 페니 와이즈라는 광대가 들어있다. 리치가 실종되고 줄줄이 아이들이 없어져 마을은 공포에 휩싸인다.

빌은 친구 에디, 스탠, , 리치 등과 친하게 지내는데 그들은 학교에서 루저로 불리고 헨리 등 불량 청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동병상련의 소녀 베벌리와 흑인 마이크를 친구로 받아들인 뒤 과감하게 헨리 패거리에 맞선다. 그런 그들 앞에 페니 와이즈가 등장해 목숨을 위협한다.

플롯은 간단하다. 페니 와이즈는 27년마다 마을에 나타나 주로 공포심이 많은 아이들을 잡아가 그들의 공포심과 육신을 먹으며 자신의 생명력을 연장한다. 빌 등은 공포 속에서 자중지란 하지만 합심해 협동해야만 페니 와이즈를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번 속편은 그로부터 27년 뒤의 얘기다.

 

빌은 말을 더듬지만 무리의 리더 역할을 한다. 그는 조지가 살아있을 것이라며 마을 하수도를 샅샅이 뒤지지만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이미 죽었다며 그를 윽박지른다. 베벌리는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고 있으며 천식을 앓는 에디의 홀어머니는 폭력적으로 과잉보호를 한다.

뚱뚱하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벤은 무리에 합류하기 전 도서관에서 살았을 정도로 소심하고, 리치는 입만 열면 막말을 쏟아낸다. 유태인 스탠은 랍비인 아버지로부터 유대교도적 생활을 강압당하고 있고, 일찍 부모를 여읜 마이크는 가축 도살을 못 해 할아버지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어른들에게 무시당한다. 빌은 조지에의 죄책감, 베벌리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 마이크는 화재로 숨진 부모 때문에 괴롭다. 벤은 책 속의 나뭇가지에 걸린 소년의 머리, 스탠은 그림 속 흉물스러운 여인, 에디는 한센병 환자, 리치는 광대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헨리는 이유 없는 광기로 폭력과 범죄를 일삼는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경찰인 아버지는 그를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일삼는다. 그래서 그는 나약한 루저들을 때리고, 마이크에게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결국 페니 와이즈와 손을 잡는 파우스트가 된다.

 

페니 와이즈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궁극의 악이다. 기체는 있지만 형질이나 형상는 없다. 주로 광대로 현현하지만 그 어떤 외형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그가 데리에 출몰하는 이유는 이곳의 성인들이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않고 고압적이고 일방적이어서 그런 것이다. 아이는 약하고 어른은 악하다.

충분한 힘을 가진 페니 와이즈가 주로 아이들을 노리는 이유는 어른이 되기 전 그와 동맹을 맺은 헨리처럼 어른들이 모두 사악하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때문에 더욱더 공포심이 크기 때문이다. 페니 와이즈가 원하는 것은 선한 사람의 공포심이지, 악한 사람의 증오나 패악은 아니다.

그래서 페니 와이즈와 그의 행패는 아이에겐 보이지만 어른에겐 인식되지 않는다. 베벌리는 세면대 배수구에서 핏물이 역류해 욕실이 핏물로 범벅이 되자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이를 듣고 나타난 아버지는 피가 어디 묻었냐며 그냥 되돌아간다. 결국 베벌리는 친구들을 불러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페니 와이즈는 아이들에게 너도 떠다닐 거야라고 경고하고, 지하 그의 거처엔 그동안 실종된 아이들이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 이 작품은 잔혹한 성장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땅에 붙어있지도 완전하게 승천하지도 못한 채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건 어른들의 편견이 아이의 완성을 막았다는 환유다.

 

빌이 리치를 찾겠다고 하면 기특해서 응원과 지원을 해도 모자랄 아버지는 외려 허튼짓 말라며 통제하고, 마이크가 가축의 머리에 총을 못 쏘자 할아버지는 죽이지 못하면 네가 죽을 것이라며 살생을 강권한다. 스탠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애초부터 랍비가 돼야 할 운명을 아버지에게 받았다.

초반에 등장한 빗물 위를 타의에 의해 부유하는 종이배는 바로 마을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일방적인 교육과 강압적인 통제를 뜻한다. 어른들 역시 어릴 때 자신 같은 부모 밑에서 그런 일규주의적 방식으로 성장했다. 결국 그것은 공포이자 규제이며 포기를 뜻한다. 또 그건 페니 와이즈다.

빌은 친구들에게 페니 와이즈와 그가 만드는 공포들이 환상에 불과할 따름이니 겁먹지 말고 합심하자고 고양한다. 그럴수록 페니 와이즈는 아이들의 공포심을 유발하며 입맛을 다신다. 빌을 붙잡은 페니 와이즈는 나머지에게 빌을 놔두고 가면 너네는 무사히 성장할 수 있다고 선택지를 던진다.

그런데 사실 페니 와이즈의 결정적인 약점은 그 자신의 공포심이었다. 관성적으로 아이 같은 어른이 될 것인가, 자기만의 주장과 신념으로 자아를 완성할 것인가?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꽤 심오한 관념론적 고찰을 던진다. 주기적인 공포라는 소재는 지퍼스 크리퍼스같지만 교훈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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