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뚫고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박재우 칼럼]
벽을 뚫고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박재우 칼럼]
  • 박재우
  • 승인 2019.05.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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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멍들어도 눈물과 땀은 헛되지 않을 것

 

[박재우 칼럼] 살다보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 회의를 품을 때가 있다. 여태껏 한 것을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본인이 틀렸음을 알아차리지만, 그동안의 비용이 아까운 나머지 끝까지 고집을 부리곤 한다.

그건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심리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보라.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까지 조립한 것을 과감히 부숴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잘못 조립한 블록에 이것저것 더 붙여봤자 더욱 거대한 실패작만 될 뿐이다. 처음부터 새롭게 접근하는 게 가장 좋은 길인 경우가 많다. 막다른 길을 돌아가지 않고 뚫고 지나가려는 건 뚝심이나 근성이 아니라 바보짓이다. 똑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데 왜 이리 인색할까?

 

아마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순수한 아이들은 자존심에 대한 개념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에 오류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처음부터 새롭게 접근할 준비가 돼있다.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인정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선의 결과를 위한 과정을 선택하는 데만 집중한다.

반면 성인이라면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남들이 자기의 잘못을 탓할까 지레 겁을 먹고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한다. 타인의 눈에 얼마나 보기 좋은가, 문제는 없는가에만 신경을 쓴다. 20대 대학생의 삶이란 마치 아이들이 블록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 아무도 모른다. 블록 장난감엔 적어도 설계도가 있지만 우리에게 미래의 설계도란 불투명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매일 고민하고 답을 갈구한다. 정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때론 지치고 방황한다. 필자 역시 좌절의 밑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서기 힘든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듯했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홀로 정체돼 있다는 생각이 내 전신을 삼켰다. 내면에선 음지에 기생하는 축축한 버섯처럼 완벽을 바라보는 강박증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난 그동안 지독하게 외롭고 괴로웠다.

그래도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결승점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 하나는 배웠다. 삶은 완성본이 없는 상태로 조립해나가는 블록 같다. 정말 멋있게 보였던 사람들 중에 자신이 그릇된 길로 빠졌음을 알고 있음에도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후진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나는 멈춰있던 게 아니었다. 수많은 자기부정을 통해 자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느라 헤맸던 것이다.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치열하게 최선을 찾는 중이다. 끝없는 절망과 방황으로 괴로워하는 청춘의 눈물과 땀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넘어지고 멍들어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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