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의 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김민범 칼럼]
복학생의 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김민범 칼럼]
  • 김민범
  • 승인 2019.04.2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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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군복무라는 핑계마저 댈 수 없는

 

[김민범 칼럼]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캠퍼스로 되돌아온 복학생이다. 남들이 말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되지 않을 거라는 불안은 없었다. 간혹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마다 내가 너무 버릇없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상대방의 작은 말소리에 잘 못 들었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군생활의 잔재가 남아있지만 이제 군인은 아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민간인의 생활은 행복했다. 숨 쉬는 일이 달콤했고, 살짝 취해 밤거리를 걷는 날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강이 다가오자 전에 없던 학구열이 솟아났다.

듣고 싶은 수업이 많아 몇 번이고 시간표를 다시 짰다. 두 번째 수업 만에 포기했던 국어의 문법, 발음, 문장 성분들을 공부하는 국어학의 이해를 기쁜 마음으로 재신청했다. 수강 신청이 끝나고는 수업 때도 안 읽던 책들을 찾아서 들춰봤다. 틈틈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옷을 사고, 파마도 했다.

과하게 복학생 티를 내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지만,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자주 했다. 그런데 3월의 학교는 생각보다 추웠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새로 산 옷은 3월에 입기는 조금 추웠다. 머리는 바람에 날려 학교 가기도 전에 망가졌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토록 그리던 캠퍼스 생활에서 간과한 게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과는 통·폐합으로 인해 돌아가기 애매한 위치에 있고, 알던 사람들은 졸업하거나 휴학했다. 일부 남아있는 학생들도 4학년이 돼 있지만 없는사람이었다. 학교생활 도킹에 실패하자 무중력상태가 됐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수업 때 첫째 줄에 앉던 열정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고 끝나면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핑계처럼 대던 군대도 다녀왔는데 달라진 게 없자 불안해졌다. 20대의 포기에 대한 담론이 연애, 결혼, 출산에서 취업과 주택으로, 또 인간관계와 꿈까지 확장되는 걸 보고 담론보다는 종용처럼 느껴졌다.

포기는 갖고 있던 걸 버린다는 뜻이다. 가진 적도 없는 걸 뺏긴 기분이었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자조해왔지만, 포기할 게 는다는 건 우습지 않았다. 새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열심이었다. 성적 관리, 대외활동, 토익, 아르바이트까지 척척 해내고, 방학 때는 모은 돈으로 여행이나 해외 봉사를 떠났다.

누군가는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도 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얘기에 겁이 났다. 학교에서 느꼈던 냉기가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대외활동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국어국문학 전공이란 내 말에 경영학과로 전과하거나 복수 전공하라고 충고를 해줬다.

 

또 공무원 시험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조언도 해줬다. 그런 분들은 노동 착취를 경험이란 우월감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나는 차마 반기를 들고 독립적일 수 없었다. 관습을 외면하면 끊임없이 뒤처질 사회적 낙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디서나 이었고, 아쉬운 건 나였다.

물론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런데도 어차피 잘 살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못 살 것 같다는 평소 생각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던 복학 첫 학기가 끝났다. 나는 국어학의 이해에서 또 재수강을 받았고, 학교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혹시나역시나가 됐다. 또 새 학기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리라는 헛된 희망은 버렸다. 여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처지겠지만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가진 게 없으니 포기할 게 없고,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자는 동병상련의 순진한 각오를 다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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