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깁스 대신 접시를 깨뜨리자 [김나윤 칼럼]
가짜 깁스 대신 접시를 깨뜨리자 [김나윤 칼럼]
  • 김나윤
  • 승인 2019.04.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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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역할 동등해진 가정 느는 추세지만 구악은 아직 잔재

 

[김나윤 칼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 때마다 TV에서 한복을 입고 송편을 빚는 화기애애한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표방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명절의 충만함과 행복함을 논하고 있을까?

그것은 명절을 둘러싼 허상일 뿐이다. 추석, 설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즐겁고 행복한 풍속도인 명절의 현실은 다르다. 명절증후군을 앓는 주부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큰집에 가기 싫다는 취업준비생들의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왜 명절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편한 잔치가 됐을까?

명절의 불편함은 이분법이 가진 배제의 원리에서 유발된다. 명절은 이분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불편하고 불평등한 시공간의 장을 연다. ‘기혼자와 미혼자’, ‘회사원과 취업준비생’, ‘정규직과 비정규직등 가족 공동체가 모인 장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이분법의 프레임 안에 갇히기 마련이다.

전자가 정상이 되면서 잉여로서의 후자는 자연스럽게 비정상으로 남는다. ‘비정상존재는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된다. 타자가 삶의 다양성을 고려해주지 않은 탓에 처절한 박탈감만 얻을 뿐이다. 그렇다고 비정상정상에 포함시켜주기 위한 타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명절은 일종의 품평회장이다. 그곳에선 가족 구성원을 대상화하고, 덕담이라는 포장 아래 심리적, 언어적 폭력이 자행된다.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구분 또한 명절을 둘러싼 이분법적 프레임이다. 명절엔 가부장제가 부여한 성 역할이 노골화된다. 명절의 제례의식의 주체는 남성이다.

명절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인 제사는 철저히 남성 위주로 진행된다(심지어 여성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주체가 되지 못한 잉여로서의 여성은 가사노동을 담당한다. 가사노동의 평등이라는 담론은 자취를 감추고, 명절의 가사노동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된다.

남성의 가사노동은 돕는다라는 표현으로 미화되며, 여성의 가사노동은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며느리로서 힘든 명절을 보내온 여성들은 시어머니라는 호칭을 얻은 이후 가부장제의 피해자에서 강력한 가부장제의 수호자로 변신해 가해자가 된다.

물론 요즘엔 남녀 모두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제례의식을 행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명절문화는 특수, 기존의 명절문화를 전복시킬 만큼 보편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추석을 맞아 가짜 깁스를 주문하는 며느리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명절증후군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주부들의 모습은 아직 진부한명절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못한 명절 문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명절을 앞두고 각종 매스 미디어에서는 명절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피로회복 아이템들이 소개된다. 이는 힐링이라 포장된 마취제와 다름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단순히 상처받은 곳에 덧칠하는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 등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명절에 작동하는 한 명절은 행복으로 봉합될 수 없다. 명절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과격한 말장난이 아니다.

주부, ‘취준생’, 미혼자 등 잉여로서의 주체들의 하소연은 철없는 볼멘소리가 아니다. 잉여들이 존재하는 한 명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날이고 싶은 행복한 날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명절은 조상께 인사드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구성원들이 모여 정답게 식사할 수 있는 행사다.

그러나 더 이상 많은 사람에게 명절은 행복한 날이 되지 못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낡은 수사로 남아 TV 속에서만 메아리칠 뿐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려면 그 이분의 프레임부터 거둬져야 한다.

가족구성원을 대상화시키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 폭력을 가하는 악습에서 벗어나고 성 역할과 가부장제 논리에서 탈피해 모두 함께 준비하고 제례의식에 참여하는 풍습이 보편화돼야한다. 그래야만 가족 구성원 모두 웃는 낯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명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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