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칼럼] 고유 문화 잠식하는 영어에 대한 경계
[박상수 칼럼] 고유 문화 잠식하는 영어에 대한 경계
  • 박성수
  • 승인 2019.04.2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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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압에도 지킨 한글이 영어에 위협 받아

 

[박상수 칼럼] 1939년 일본은 우리 문화를 억압함으로써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실시했다. 한글의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도록 강제했던 창씨개명도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영화 말모이에서 보듯 그런 억압적 시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한글을 소중히 지켜왔다.

그로부터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습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단지 80여 년 전의 일본어가 사라졌다면, 현재 그 자리를 영어가 차지했다는 것뿐이다. 과거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한글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우리 스스로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무분별한 영어 남용으로 병들고 있다. 커피를 마시려고 밖으로 나가면 한글 간판보다 영어로 돼있는 것이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띈다. ‘Starbucks Coffee’, ‘Tom N Toms’, ‘Angel-in-Us Coffee’ 등은 물론 소규모 커피숍까지 영어로 된 간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스타벅스 커피, 탐 앤 탐스, 엔젤리너스 커피 등 한글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굳이 알파벳으로 쓰는 이유는 뭘까? 점포 안에선 고객을 위한 K팝이 흘러나온다. 가요임에도 불구하고 가사 중 절반 이상이 영어로 돼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노래들이 현재 각종 차트를 휩쓸고 있다.

 

동생과 경기도 일산의 쇼핑몰 라페스타에 간 적이 있다. 문득 눈앞에 보이는 간판들이 전부 영어로 이뤄져있다는 사실에 놀라 간판을 한글로 하면 훨씬 알아보기 편할 텐데, 그렇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 이게 더 낫지 않아? 한글로 하면 촌스러울 듯해라고 대답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 동생의 반응은 아마도 현재 우리나라의 10대와 20대들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뜨면 흔히 보이는 영어 간판과 귀를 열면 자주 들리는 영어 가사로 이뤄진 대중가요가 무의식중에 한글은 촌스럽고 영어는 세련돼 보인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100명 중 한 명이 채 되지 않는 수의 사람만이 이 글을 읽지 못한다. 세계 최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문맹률도 한국보다 높은 편이고,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 역시 우리나라보다 문맹률이 높다. 이는 한글이 배우기 쉬운 덕분이다.

일본과 중국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기에 글을 배우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환경이다. 미국과 영국이 쓰는 알파벳은 한글처럼 표음문자이긴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단어를 표기하려면 알파벳을 길게 나열해야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비해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나타내는 소리가 단 한 개뿐이며, 개별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 역시 하나다. 한글이 한자, 히라가나, 알파벳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이유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창제된 날짜, 한글을 창제한 인물, 한글을 창제한 원리를 기록한 책이다.

이처럼 특정 언어의 창제 원리, 인물, 날짜를 기록한 책은 전 세계에서 훈민정음 해례본만이 유일하다. 이 사실만으로도 큰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이를 인정받아 훈민정음 해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에 당당히 제 이름을 올렸다. 한글의 우월함은 그 뿐만이 아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는 한글을 국제 공개어로 채택했다.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은 그들의 언어인 찌아찌아말을 표기하는 데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그토록 지켜야 할 가치가 충분한 한글인데 외국어가 우리 문화를 잠식하는 문화적 침략 행위를 우리 스스로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김성식 시인은 문화는 역사의 덩어리요, 역사는 문화의 근원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문화는 역사의 열매요, 역사는 문화의 뿌리다.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가 있고 문화가 있는 곳에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범람하는 외국 문화들 속에서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해 훼손을 방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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