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가 아니어도 부모님을 존경 [정지윤 칼럼]
'금수저'가 아니어도 부모님을 존경 [정지윤 칼럼]
  • 정지윤
  • 승인 2019.04.2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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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풍족하지 못하지만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힘찬 내일 개척

 

 

 

 

 

 

 

 

 

[정지윤 칼럼]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급식을 먹었기에 빈부격차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다 누군가를 가리켜 쟤네 집 굉장히 잘 산대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 집 경제적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 부자 친구도 나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니까.

대학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모든 또래가 나와 같은 삶을 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생 중 특히 외국에서 오래 살다와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방학마다 유럽 여행을 떠나는 동기들의 모습은 지방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30만 원으로 시작한 나의 자취생활은 다행히 소비에 별로 관심이 없는 무덤덤한 성격 덕분에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가끔은 철저하게 1000원까지 계산해가며 끼니를 때워야하는 고비에 부딪혔다. 돈이 넉넉해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통장을 보면 초조해질 만큼 잔액이 얼마 남지 않곤 했다.

친구들이 1만 원 이상의 비싼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려 할 때면 나는 혼자서 재빨리 저걸 먹으면 나중에 생활비가 빠듯해지지 않을까라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6000원짜리 요거트 스무디도 어느 순간 큰마음으로 결단을 내려야만 먹을 수 있는 사치가 돼버렸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살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수저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쓰는 금수저’, ‘흙수저하는 말이 내게도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사소한 물건을 살 때도 금전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내게 자연스레 아무 걱정 없이 돈을 쓰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지 않을까? 요즘 학교 게시판 어느 곳에나 금수저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기에 자연스레 나의 수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다가온 현실의 벽이 부모님을 수저에 비유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꿋꿋이 잘 살고 있다가도 한 번씩 돈 때문에 하루가 허탈해지면 나는 왜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을까?’라며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질 때가 있었다. 몇 만 원으로 몇 주를 버텨야할 때면 왜 엄마는 용돈을 이거밖에 안 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도 한바탕 울고 나면 신기하게 다시 씩씩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선 우스웠던 적이 몇 번 있다. 엄마와 아빠는 전화를 걸어올 때면 예외 없이 용돈이 부족하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한 번도 부족하다고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전화를 할 때면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라는 말로 시작해 미안하다라는 말로 끝내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나는 그저 괜찮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투정을 부리기엔 나는 이미 세상을 알 만큼 부쩍 커버렸고 부모님은 세월 앞에 많이 연약해지셨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청춘들이 부모님 앞에서 씩씩한 척할 것이다. 정작 학교 앞 음식점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청춘들이 많음에도. 자식이 성인이 돼도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항상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부모를 그저 수저라는 한 단어로 함축할 수 있을까.

금수저가 아니어도 청춘들은 알아서 꿋꿋이 버티며 살아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수저를 만들고 있다. 그게 꼭 금, 은이어야만 행복한 것일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부러지지 않는 강철 수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대왕 수저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하지만 열심히 나만의 수저를 만들며 원래 해오던 것처럼 부모님 앞에서 씩씩한 자식이 되고 싶다. 부모를 결코 수저로만 저울질하기엔 그들에게 받은 무한하고 조건 없는 은혜가 소중하다. 먼 훗날 부모님 앞에 나타나 자랑스레 내가 만든 수저를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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