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정준영, 우상, 모럴 해저드, 노블레스 오블리주
승리, 정준영, 우상, 모럴 해저드, 노블레스 오블리주
  • 유진모
  • 승인 2019.04.20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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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의 도덕적 해이는 국가, 사회, 대중에게도 공동의 책임이
그리스 주신 제우스. 글 내용과 관계없음.
그리스 주신 제우스. 글 내용과 관계없음.

 

버닝썬 폭행 사건은 대형 사건의 불씨였을까, 그동안 숨겨져 있던 연예 스타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저인망이었을까? 승리, 정준영, 휘성, 박유천 등 매일 양파처럼 폭로가 거듭되는 연예인이 연루된 충격적인 범죄 사건 및 혐의 등에 관한 뉴스는 대중의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에 입사한 소위 중간 이상 계층의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나 그걸 통해 쌓은 실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에 그만큼 큰돈을 벌었다고 하기 쉽진 않다. 조용필이나 이승철 정도라고 하긴 힘들 것.

현시대상은 깊은 지성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연예인의 타락과 도덕적 해이는 화제성과 접근성 때문에 가장 쉽게 접하는 소재다. 20세기의 그 이슈는 주로 간통, 대마초, 폭력에 국한됐다. 가끔 필로폰도 있었지만 떳떳한 연애마저도 철저하게 숨길 정도로 도덕이 거리를 활보했었다.

연애를 스캔들이라고 표현하는 무지한 매체는 사라지는 추세고, 연예인 스스로 연애와 결별을 당당하게 밝힐 줄 아는 투명한 개념이 정립됐지만, 반대로 도덕적 기준은 무너졌다. “나 잘못한 척하고 올게라는 정준영의 한마디가 요즘 연예인의 도덕성의 기준을 거의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이하 방송 화면 캡처.
이하 방송 화면 캡처.

 

스티브 유(유승준)를 계기로 한국 연예인의 도덕적 수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국방의 의무를 마치겠다고 떠들던 그는 막상 선택압의 시각을 맞자 미국인으로 돌아섰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갖은 변칙으로 군 입대를 피하던 비리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20세기의 연예인에게 군대는 인기의 공백, 경력의 단절, 별자리로의 재입성이 불분명한 터널이었다면 현재는 재충전, 새로운 경험,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한 번 정도는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일종의 면책특권 획득의 기회다. 대다수는 입대 전과 군 제대 후 다를 게 없거나 오히려 더 낫다.

일부가 매우 겸손하고 조용하게 입대하되 일부러 힘든 복무를 선택하는 배경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성장은 연예인의 몸값을 물가상승지수보다 비약적으로 높였다. 한류열풍은 한국 연예인의 신비성을 할리우드 스타에 버금가게 상승시켰다. 그 결과 한국엔 많은 우상들이 제단을 차렸다.

아니, 팬들이 신전을 지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듯하다. 선물이라야 종이학이나 손뜨개 목도리 정도였던 20세기와 차원이 다르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이 당연한 듯 제단에 바쳐지고, 신도들은 각종 행사장에서 사비를 털어 만든 스타를 홍보, 응원하는 사은품을 기자와 관계자에게 뿌리며 주문을 외운다.

 

뿐만 아니다. 정치인, 경제인, 고위 공무원 등 소위 부와 권력을 지닌 사회 지도층 인사 중 일부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연예인과 친분관계를 쌓으려 하고, 그게 이뤄지면 홍보와 이미지메이킹에 적극 활용한다. 이쯤 되면 해당 연예인은 스스로를 신격화할 필요도 없이 우상의 제단에 앉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발밑에 세상이 놓이고, 정치인이 사람 하나하나를 표의 수로 세듯 그는 팬 개체수를 돈으로 환산하며, 여자는 성의 노리개로밖에 여기지 않으며, 자신은 도덕적 해이에 대해 불체포특권을 지녔다고 착각하게 된다. 연예인 모럴 해저드의 책임은 개인은 물론 나라, 정책, 그리고 대중에게도 있다.

면책특권,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특권과 이권 중 상당수는 독재 정권이 입법부를 길들이기 위한 당근이었다. 스스로 국부라 부른 이승만에서 보듯 대통령 등이 얼마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있었는지, 국민이 얼마나 바보같이 권력에 굴복하고 노예근성에 젖어있었는지 알 수 있다.

공권력은 공공의 권익을 위해서만 특권을 지닌다. 구급차는 위급한 생명을 구할 때만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수 있다. 세월호 혐오 정치인을 응원하는 자가 존재하고, 견인차가 오로지 사익을 위해 밥 먹듯 법을 위반해도 경찰이 좌시하는 현실에서 대형 스타가 우상 노릇을 하는 건 별로 이상할 게 없다.

 

현재의 40대 이상은 학교에서 토론의 수업을 경험하지 못했다. 왜 역사를,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고, 교사의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 복종해 국영수위주로 달달외우도록 억압당한 채 졸업했다. 역사는 바르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철학은 정의와 이성과 도덕을 위해 꼭 필요함에도.

초기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으로 모범을 보였다. 공공봉사와 기부는 일상이었고, 전쟁에선 항상 선봉이었다. 그러나 제정 이후 이는 사라졌다. 양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때 수많은 영국과 미국의 왕족, 귀족, 고위층 자제가 참전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은 다른 군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전사한 아들의 시신 수습을 포기하라고 지시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신분에 비례한 도덕적 의무다. 어느 시대건 각종 부조리의 원인은 내면의 도덕학을 외면한 채 현실의 경제학을 제1의적으로 설정한 가치관에 있기 마련이다.

일부 지도층의 비뚤어진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이 야기한 모럴 해저드가 자본주의의 공장에서 흘러나온 유독성 물질이라면, 거기에 편승하고 복종하는 자는 역병이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본주의의 방부제다. 체제 전복에 반대한다면 숭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우상의 난동부터 진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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